최원대

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. 기록, 소통, 자기탐색, 그리고 치유.
정보를 남기기 위해 글로 기록하고, 기록을 타인과 나눈다. 이런 사회적인 맥락 외 오롯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글을 쓴다.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기도 한다.
생성형 AI가 콘텐츠 생산은 물론 심리 상담의 역할도 한다는 요즘. 기록과 소통, 자기탐색을 넘어 과연 치유의 영역에서도 AI는 도움이 될 수 있을까.
치유적 글쓰기에서도 AI가 유용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. 특히 기록과 정리에 있어 꽤 유용하다. 머릿속에 흩어진 기억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거나, 감정이 뒤섞인 메모를 나누거나, 반복되는 생각의 패턴을 요약해 보여주는 일. 이 과정에서 AI는 분명 도움이 된다.
소통 영역에서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. 감정이 과도하게 날카로워진 문장을 누그러뜨리거나, 타인에게 설명이 필요한 맥락을 덧붙이는 데 도움을 준다.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문장으로 꺼내게 만드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. 이 단계까지는 치유 글쓰기에서도 AI 활용이 가능하다. AI가 감정을 대신 느끼지는 못해도 언어로 옮기는 통로를 열어줄 수는 있다.
문제는 그다음이다. 자기탐색과 치유의 핵심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, AI의 개입은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.
치유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. 불편한 감정 사이를 천천히 통과하며 관찰하는 것이다.
그런데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이 개입하면 자칫 '이 감정은 이런 것'이야 하고 섣부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. 치유가 아니라 '잘 정리된 감정'만 남게 되며, 이는 실제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.
AI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, 상처를 겪지 않았으며, 그 해석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. 그럼에도 의미 부여까지 맡기게 되면 글은 정리되지만 마음은 전혀 정돈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.
치유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, 이를테면 왜 이 감정이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지, 이 상처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,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대신 답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.
또한 애초에 AI에게 상담을 청하는 이들은 대게 전문가가 아니다.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은 내 마음에 접근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다. 애초에 심리 전문가를 찾는 이유기도 하다.
물론 AI도 다양한 심리학 기법을 학습했으나, 그 정보를 적절히 끄집어내어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. 지식이 없으면 활용도 어렵다.
치유적 글쓰기에서 AI는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다. 정리를 돕고, 언어화를 거들고, 접근을 쉽게 만들 수 있다. 그러나 해석자나 치유자가 될 수는 없다.
글은 다듬어질 수 있어도, 회복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. 치유는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다.
그래서 치유를 목적으로 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. AI는 기록과 정리까지만 허용할 것. 의미와 해석, 회복의 자리는 사람에게 남겨둘 것.
이 경계만 지켜진다면, AI 시대에도 치유적 글쓰기는 여전히 사람을 회복시키는 언어로 남을 수 있다.